여행 이야기
드라마 '아이리스'의 배우가 아닌 작가 김혜진의 기획초대전


인사동에 나가면 항상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아라아트센터인데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인사동 중앙 대로만 오갔었는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니 의외의 장소들이 등장하더군요. 아라아트센터는 규모가 좀 있어서 보통 다섯 가지 정도의 전시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미술관 옆으로 난 골목을 조금만 걸어나가면 조계사를 만날 수 있어요.


 

미술관은 특별히 목적없이 들려 보는 것도 색다른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이번에 김혜진 작가도 그렇게 만날 수 있었는데요. 


 

아라아트센터 일층으로 들어가니 독특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독특함은 내용적인 측면이라기 보다는 주로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러했는데요. 일반적으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달리 작가는 다양한 캔버스 양식을 택하고 있었습니다. 동그란 방패 형상의 작품은 거울처럼 반사되는데, 플라스틱 재질을 사용한 것 같았고 사각의 캔버스에도 콜라주 기법으로 입체적인 형상을 더한 그림들도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전시관의 중앙에는 아이를 주제로한 조각 작품도 있었구요. 작품의 내용 뿐 아니라 형식과 재질까지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아는 작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시관을 둘러 보면 다양한 형태의 그림들이 펼쳐지는데, 내용은 크게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있더군요. ‘엄마와 아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작가는 아주 어릴 때 모친을 잃었는데요. 전시된 작품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개인적 그리고 일반화된 차원에서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위의 작품은 탄생화를 테마로 해서 만들어진 작품인데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탄생이라는 주제로 다양하게 확장되어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에 사용된 캔버스에는 또한 관람자의 모습이 비치는 일종의 거울이 많이 사용되었는데요. 이는 작품에서 말하는 탄생의 의미와 함께 관객 자신의 과거 혹은 내면에 대해 되돌아 볼 것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이번 작품전에서 명심보감의 내용이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는 게 우연이 아닌 듯 하네요 .


 

전시장 중앙에서 만날 수 있는 아이들 조각입니다. 모두 열 둘로, 12개월에 각각 배치되어 있습니다. 탄생화에 의미를 부여했듯 아이들 조각에도 태어난 시기에 따라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 듯 합니다. 기도하는 아이, 물구나무를 선 아이, 푸시업을 하는 아이 등 다양한 컨셉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진열되어 있는데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아이들의 모습에 다양한 관점으로 투영된 것이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작가가 그렸던 탄생화들이 개별적으로 구체화된 작품들 같습니다. 캔버스는 여전히 거울 형식을 취하고 있네요. 작가는 일관성 있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관객의 내면과 소통하고자 하는 듯 합니다. 


 

그림 안의 그림. 콜라주 기법으로 부착된 8개의 네모가 여러가지 내면의 상상 또는 염원을 드러내고 있는 듯 합니다. 



구상과 추상의 기법이 절충되어 있는 작품 같은데요. 한 때 미국 미술계를 휩쓸었던 추상표현주의와 독일, 이태리 등 유럽을 주도했던 신표현주의가 오버랩 된 듯한 느낌도 듭니다. 


 

그림들을 한 켠에는 작가 유년시절의 미학적 재현 또한 만날 수 있는요. 작가의 마음 속에 엄마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그 과거의 시간들이 고통이라기 보다는 부드러운 핑크빛 희망으로 채색되어 있는 듯 합니다. 부드럽지만 심적으로 강인한 면모를 살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작품전은 지난 11월 3일까지 진행되었는데요. 왕성환 활동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조만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시장을 한참 둘러 보고 있는데, 별안간 한 미모의 여성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작가 김혜진씨였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녀가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김태희 친구역으로 나왔던 배우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배우를 미술 전시장에서 만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알고보니 그녀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미술학도였더군요. 운 좋게도 저는 도슨트를 자임한 작가로부터 작품 전반에 대한 해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냥 작품을 스스로 인상비평하는 것과 작가로부터 작품의 의도와 의의를 전해듣는 것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더군요. 배우 생활하기도 시간이 빠듯했을 텐데, 작품 활동까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전 카달로그를 한장 펼치면 맨 앞에 등장하는 그림입니다. 아마 이 그림에는 그녀가 이번 전시회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엄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 모성을 향한 따뜻한 마음이 작가 김혜진의 앞길을 더욱 밝혀 주길 기원합니다. 



2015.11.22 07:00